목차
Ⅰ.들어가는 부분
Ⅱ.중간 부분
1.서양의 화장실
(1)고대
(2)중세
(3)근대
(4)근대의 변화
2.한국의 화장실
(1)한국인의 뒷간문화
(2)똥에 대한 시각
(3)한국의 전통 뒷간
(4)그 외 나라들의 뒷간
Ⅲ.마지막 부분
Ⅱ.중간 부분
1.서양의 화장실
(1)고대
(2)중세
(3)근대
(4)근대의 변화
2.한국의 화장실
(1)한국인의 뒷간문화
(2)똥에 대한 시각
(3)한국의 전통 뒷간
(4)그 외 나라들의 뒷간
Ⅲ.마지막 부분
본문내용
間) ’도 이러한 의미를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뒷간이라고 부른 것은 화장실이 살림채에 붙어 있지 않고 뒷마당에 별채 형태로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뒤에 따로 떨어진 측간’이란 뜻으로 ‘뒷간’이라 부른 것이다. 이 뒷간이란 말은 1459년<월인석보>에서 처음 나타난다.
2)뒷간을 따로 떼어 놓은 이유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만큼 우리네 조상들은 인분을 거름으로 내어 썼는데 이렇게 뒷간의 인분을 거름으로 쓰자면 인분을 부패·발효시켜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메탄·질소·암모니아 등의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가스를 원활하게 배출시켜 냄새를 없애려면 뒷간의 위치는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있어야 했다.
또한 통풍이 잘 되어야만 인분 속에 있는 미생물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어 발효가 더욱 빨라진다. 통풍을 잘 되게 하는 것은 냄새 문제를 해결하고 미생물 발효를 돕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 집의 좌향 등을 고려하여 뒷간의 위치를 결정했다. 통풍이 잘 되려면 우선 뒷간을 살림채에서 따로 떨어뜨려야 했고 집의 구조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해 냄새가 살림채로 넘어 들어오지 않도록 공간적 배치를 했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2)똥에 대한 시각
1)한국인의 똥에 대한 시각
우리 조상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이 없던 시절에 농사를 잘 짓는 비결은 하늘과 땀과 거름이라고 생각했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고 하듯 그해의 날씨는 풍년과 흉년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 요소였고 그 다음에는 땀이었다. “하루 일이 본전이라도 식전에 하는 일만큼은 이익”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침밥 먹기 전에 하는 새벽일까지도 소중히 챙길 만큼 농사를 잘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땅은 저짓말을 못한다”는 말이나 “농작물은 땀의 양만큼 수확한다”는 속담이 농촌사람들 입에서 계속 오르내리는 것이다.
바로 그 땀을 흘려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거름이다. 거름을 잘 준비하고 만들어야 일년 농사가 풍성해진다. 우리 속담에 “한 사발 밥은 남에게 주어도 한 삼태기 재는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거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증하는 속담이다. 이렇게 귀한 똥·오줌이었기에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 근교에 사는 농민들은 시내에 들어와 돈을 내고 똥·오줌을 퍼갔다. 자료에 의하면 똥재는 상품으로 거래되어 1900년대 초 수원에서는 상등품 한 섬에 30전, 중등품은 20전, 하등품은 10전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똥을 몰래 퍼갈까봐 야밤 감시를 했을 정도였다. 또한 농촌에서도 일꾼이 없는 집의 경우에는 그 집 분뇨를 퍼가는 사람이 대가로 메주콩으로 답례하는 풍습이 근래까지도 전해져 왔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2)최초의 수세식변기 매화틀
매화틀은 조선시대에 임금이나 왕족들이 사용하던 휴대용 변기다. 매화틀 또는 매우틀이라고 불렀는데 임금의 분뇨를 매화 또는 매우로 은유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매화라는 말은 임금의 용변을 ‘봄비에 흩날리는 매화’로 비유한 것이며 매우에서 매(梅)는 큰 것을 말하며 우(雨)는 작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원래 이 말들은 매회틀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매회’란 나무재를 말하는데 휴대용 변기의 경우에는 변기통 안에 재를 미리 뿌리므로 ‘매회’를 담은 틀이라 하여 ‘매회(梅灰)틀’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임금의 용변을 은유화하면서 비슷한 말인 ‘매화’, ‘매우’란 말로 변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매화틀은 일종의 의자식 변기로서 좌우, 뒤쪽은 막히고 앞쪽은 트인 ‘ㄷ’자 모양으로 된 나무 좌변기다. 틀 밑에는 요즈음 아기용 변기처럼 윤기나게 닦은 서랍식 구리그릇이 놓여 있고 나무틀 위에는 빨간 우단을 깔아놓았다. 이것을 사용할 때는 매화틀을 관리하는 지밀나인이 구리 변기 안에 매추(梅芻)라고 하는 ‘잘게 썬 여물’이나 매회를 미리 뿌려놓고 가져간다. 왕이 일을 보고 나면 또 다른 상궁은 깨끗한 명주 수건을 준비하고 있다가 뒤를 닦아주고 나인은 매추를 다시 뿌린 후 매화틀에서 구리 변기를 꺼내어 이를 왕실병원인 내의원에 보낸다. 내의원에서는 왕의 대변 상태, 즉 변의 농도와 색깔 등을 살피고 심지어 맛까지 보면서 왕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3)요강문화
일반 백성부터 임금까지 두루 썼던 요강은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신부들의 필수 혼수용품이었다. 요강은 주로 여자들이나 어린이 그리고 노약자들이 많이 썼지만 옛 선비들도 사랑채 툇마루의 끝에 오줌동이나 요강을 두고 소변기로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강은 충남 부여군 군수리에서 발굴된 백제의 요강 두 개다. 그 중 하나는 호랑이가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는 모양이라 하여 일명 호자라고 불리는데 중국에서도 이와 같은 요강그릇이 많았다고 한다. 등의 손잡이와 짧은 다리가 앙증맞고 귀엽다. 호자란 호랑이 모양으로 만든 토기를 말한다. 이 토기는 동물 모양 청동기에서 점차 발전된 형식으로 여겨진다. 부여 군수리에서 발견된 호자는 남성용 소변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는 동물을 형상화하여 다소 해학적이며 백제의 독창적인 면을 짐작케 해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도 요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요강에 담긴 오줌의 상태를 보고 건강을 점검했다고 한다. 이렇듯 요강의 용도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저마다의 필요한 구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임금의 용체를 점검하는 도구로 쓰여졌고 선비들에게 품위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쓰였으며 여성들에겐 사회규범상의 제약과 필요에 따라 쓰였고 노약자나 어린이들에게는 편리의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이 요강은 남녀가 따로 사용했는데, 요강의 재질을 보면 그 집안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었다. 자기로 만든 고급 요강부터 질그릇으로 만든 서민 요강도 있으며 유기로 된 요강도 있고 나무 속을 파서 옻칠하여 만든 요강도 쓰였다. 신분 높은 왕족의 여인인 경우에는 가마 속에서 소변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는 비단으로 촘촘히 짠 비단 요강도 있었다고 한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3)한국의 전통 뒷간
1)부
2)뒷간을 따로 떼어 놓은 이유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만큼 우리네 조상들은 인분을 거름으로 내어 썼는데 이렇게 뒷간의 인분을 거름으로 쓰자면 인분을 부패·발효시켜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메탄·질소·암모니아 등의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가스를 원활하게 배출시켜 냄새를 없애려면 뒷간의 위치는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있어야 했다.
또한 통풍이 잘 되어야만 인분 속에 있는 미생물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어 발효가 더욱 빨라진다. 통풍을 잘 되게 하는 것은 냄새 문제를 해결하고 미생물 발효를 돕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 집의 좌향 등을 고려하여 뒷간의 위치를 결정했다. 통풍이 잘 되려면 우선 뒷간을 살림채에서 따로 떨어뜨려야 했고 집의 구조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해 냄새가 살림채로 넘어 들어오지 않도록 공간적 배치를 했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2)똥에 대한 시각
1)한국인의 똥에 대한 시각
우리 조상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이 없던 시절에 농사를 잘 짓는 비결은 하늘과 땀과 거름이라고 생각했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고 하듯 그해의 날씨는 풍년과 흉년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 요소였고 그 다음에는 땀이었다. “하루 일이 본전이라도 식전에 하는 일만큼은 이익”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침밥 먹기 전에 하는 새벽일까지도 소중히 챙길 만큼 농사를 잘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땅은 저짓말을 못한다”는 말이나 “농작물은 땀의 양만큼 수확한다”는 속담이 농촌사람들 입에서 계속 오르내리는 것이다.
바로 그 땀을 흘려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거름이다. 거름을 잘 준비하고 만들어야 일년 농사가 풍성해진다. 우리 속담에 “한 사발 밥은 남에게 주어도 한 삼태기 재는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거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증하는 속담이다. 이렇게 귀한 똥·오줌이었기에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 근교에 사는 농민들은 시내에 들어와 돈을 내고 똥·오줌을 퍼갔다. 자료에 의하면 똥재는 상품으로 거래되어 1900년대 초 수원에서는 상등품 한 섬에 30전, 중등품은 20전, 하등품은 10전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똥을 몰래 퍼갈까봐 야밤 감시를 했을 정도였다. 또한 농촌에서도 일꾼이 없는 집의 경우에는 그 집 분뇨를 퍼가는 사람이 대가로 메주콩으로 답례하는 풍습이 근래까지도 전해져 왔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2)최초의 수세식변기 매화틀
매화틀은 조선시대에 임금이나 왕족들이 사용하던 휴대용 변기다. 매화틀 또는 매우틀이라고 불렀는데 임금의 분뇨를 매화 또는 매우로 은유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매화라는 말은 임금의 용변을 ‘봄비에 흩날리는 매화’로 비유한 것이며 매우에서 매(梅)는 큰 것을 말하며 우(雨)는 작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원래 이 말들은 매회틀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매회’란 나무재를 말하는데 휴대용 변기의 경우에는 변기통 안에 재를 미리 뿌리므로 ‘매회’를 담은 틀이라 하여 ‘매회(梅灰)틀’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임금의 용변을 은유화하면서 비슷한 말인 ‘매화’, ‘매우’란 말로 변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매화틀은 일종의 의자식 변기로서 좌우, 뒤쪽은 막히고 앞쪽은 트인 ‘ㄷ’자 모양으로 된 나무 좌변기다. 틀 밑에는 요즈음 아기용 변기처럼 윤기나게 닦은 서랍식 구리그릇이 놓여 있고 나무틀 위에는 빨간 우단을 깔아놓았다. 이것을 사용할 때는 매화틀을 관리하는 지밀나인이 구리 변기 안에 매추(梅芻)라고 하는 ‘잘게 썬 여물’이나 매회를 미리 뿌려놓고 가져간다. 왕이 일을 보고 나면 또 다른 상궁은 깨끗한 명주 수건을 준비하고 있다가 뒤를 닦아주고 나인은 매추를 다시 뿌린 후 매화틀에서 구리 변기를 꺼내어 이를 왕실병원인 내의원에 보낸다. 내의원에서는 왕의 대변 상태, 즉 변의 농도와 색깔 등을 살피고 심지어 맛까지 보면서 왕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3)요강문화
일반 백성부터 임금까지 두루 썼던 요강은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신부들의 필수 혼수용품이었다. 요강은 주로 여자들이나 어린이 그리고 노약자들이 많이 썼지만 옛 선비들도 사랑채 툇마루의 끝에 오줌동이나 요강을 두고 소변기로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강은 충남 부여군 군수리에서 발굴된 백제의 요강 두 개다. 그 중 하나는 호랑이가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는 모양이라 하여 일명 호자라고 불리는데 중국에서도 이와 같은 요강그릇이 많았다고 한다. 등의 손잡이와 짧은 다리가 앙증맞고 귀엽다. 호자란 호랑이 모양으로 만든 토기를 말한다. 이 토기는 동물 모양 청동기에서 점차 발전된 형식으로 여겨진다. 부여 군수리에서 발견된 호자는 남성용 소변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는 동물을 형상화하여 다소 해학적이며 백제의 독창적인 면을 짐작케 해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도 요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요강에 담긴 오줌의 상태를 보고 건강을 점검했다고 한다. 이렇듯 요강의 용도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저마다의 필요한 구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임금의 용체를 점검하는 도구로 쓰여졌고 선비들에게 품위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쓰였으며 여성들에겐 사회규범상의 제약과 필요에 따라 쓰였고 노약자나 어린이들에게는 편리의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이 요강은 남녀가 따로 사용했는데, 요강의 재질을 보면 그 집안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었다. 자기로 만든 고급 요강부터 질그릇으로 만든 서민 요강도 있으며 유기로 된 요강도 있고 나무 속을 파서 옻칠하여 만든 요강도 쓰였다. 신분 높은 왕족의 여인인 경우에는 가마 속에서 소변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는 비단으로 촘촘히 짠 비단 요강도 있었다고 한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이동범, 2000
(3)한국의 전통 뒷간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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