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01. 국어의 계통
002. 국어의 형성
003. 문자
004. 고대 국어
005. 전기 중세국어
006. 후기 중세국어
002. 국어의 형성
003. 문자
004. 고대 국어
005. 전기 중세국어
006. 후기 중세국어
본문내용
근대 한국어: 17~19세기 한국어
(8라) 현대 한국어: 20세기 이후의 한국어
(8)의 시대 구분은 왕조 교체와 같은 언어 외적인 요인보다는 언어 내적인 변화를 중요한 근거로 삼은 것이다. 물론 이 두 요인이 완전히 별개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왕조 교체로 인해 한반도 언어의 중심지가 경주에서 개성으로 이동하는 언어 내적인 변화를 겪었다. 언어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언어 내적인 변화를 겪은 것이다. 이를 두고 고대 한국어와 중세 한국어의 구분이 왕조 교체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보다 정확히는 왕조 교체를 통한 언어 중심지의 이동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세 한국어 단계에서 전기와 후기를 나눈 근거로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나 훈민정음의 창제를 역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과 조선의 왕조 교체나 이로 인한 개성에서 서울로의 중앙어의 이동이 언어 변화의 요인이 될 수 없고,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표기법 상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언어 자체를 변화하는 요인은 되기 어렵다. 중세 한국어 시기를 전기와 후기로 나눈 기준은 14세기경에 있었던 대규모의 모음 변화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중세 한국어와 근대 한국어의 구분 역시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전란 이전에 이미 한국어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그 변화가 완성된 시기인 16세기 후반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한 것이다. 현대 한국어의 시기는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삼는 경우부터 해방 전후로 삼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대략적으로 20세기 초를 그 경계로 삼고 있다.
4. 文字의 體系
1절. 文字의 定着
(1) 歷史書 編纂
高句麗: 留記 100권 - 600년 新集으로 改修.
百濟: 375년 書記 편찬.
新羅: 545년 國史 편찬.
(2) 口語와 文語의 불일치
라틴어와 중세 유럽의 상황과 유사.
문어와 구어의 干涉: 한문 요소가 국어에 침투.
2절. 固有名詞 表記
1. 고유명사의 표기
- 인명과 지명과 같은 고유명사의 표기 필요성 대두.
- 한문이 고유명사 표기 부호로 이용되어 자국어 표기의 첫 단계가 성립.
- 고유명사 표기를 시작으로 借字表記法이 시작.
2. 표기법의 원리
- 한자의 表意的 機能과 表音的 機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이용함.
1) 表意的 機能: ‘古’자를 그 의미와 관계없이 ‘고’라는 음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
한자의 六書 가운데 假借의 원리와 동일하므로 독창적인 방법 아님.
▶ 釋讀字
2) 表音的 機能: 표의성을 자국어의 단어로 공정시키는 원리.
‘水’자를 그 음과는 관계없이 ‘믈’이란 단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
‘믈’을 ‘水’의 새김(釋 또는 訓)이라함. 독창적인 방식.
▶ 音讀字
- 현재 音讀의 전통: 통일신라 경덕왕(757) 중국식 지명(한자 2자)으로 개명한 것.
3. 釋讀의 전통
1) 赫居世: 삼국유사(권1) 蓋鄕言也 或作弗矩內王 言光明理世也
赫居世: 釋讀, 弗矩內: 音讀 赫=弗, 世=內 居: 音讀
2) 元曉: 元曉亦是方言也 當時人皆以鄕言稱之 始旦也
3절. 吏讀
- 한자를 이용한 국어 표기의 노력은 고유명사 표기에 이어 문장 표기로 이어짐.
1) 초기 吏讀 資料
- 고구려: 延壽元年太歲在卯三月中太王敬造
- 경주 丹鳳塚의 銀盒의 銘文.
- 三月中: ‘中’은 처격 표시.
- 신라로 이어져 본격적인 吏讀로 발달.
2) 명칭
- 帝王韻紀(1287년경): 吏書
- 大明律直解(1395): 吏道
- 訓民正音, 世宗實錄: 吏讀
- 신라 시대 이러한 명칭이 사용된 것은 확인하기 어려움.
- ‘吏讀’란 명칭은 ‘吏胥’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신라시대에는 金石文에도 사용된 점으로 이 명칭은 이후에 생긴 것으로 판단.
3) 壬申誓記石
- 임신서기석: 신라 때 금석문. 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慶州市) 견곡면(見谷面) 석장사(石丈寺) 부근에서 발견된 자연석이다. 길이 32㎝, 나비 12.5㎝, 두께 2㎝. 아래쪽으로 좁아지는 모양으로 5행 74자의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와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비문은 임신년 6월 두 화랑도가 나라에 충성할 것과 앞으로 3년 안에 《시경》 《상서》 《서경》 《예기》 《좌전》을 습득하겠다고 맹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임신년이라는 간지는 신라 때 국학이 체제를 갖춘 뒤인 732년(성덕왕 31)이거나 화랑도가 융성하였던 시기인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문은 신라융성기에 청소년들의 유교도덕사상을 엿볼수 있으며 고대문화사, 특히 학술사상사·서식 등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壬申年六月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 한문 어순: 壬申年六月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自今三年以後 執持忠道 誓无過失 若失此事 誓得大罪天 若國不安大亂世 誓之可容行 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誓倫得詩尙書禮傳三年
- 신라어의 어순에 따라 배열.
- 문법형태소는 ‘之’만 종결형으로 표시하고 있음.
4) 新城碑(591)
辛亥年二月卄六日 南山新城作節 如法以作 候三年崩破者 罪敎事爲聞敎令誓事之
- 節, 以, 敎, 令, 爲, 之
- 석독되어 읽으며 한자의 본래 의미로 사용한 점으로 초기 이두로 볼 수 있음.
5) 葛項寺 造塔記(758)
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立在之
妹三人業以成在之(겨오)
者零妙寺言寂師在(겨며, 있으며)
姉者昭文皇太后君女在
妹者敬信太王女在也
- 명실상부한 이두의 성립은 新城碑, 葛項寺 造塔記를 통해 볼 때, 대체로 7세기로 설정.
- 이두를 설총이 지은 것이라고 하나 믿기 어렵고, 口訣과 관련 있을 것임.
- 19세기 말까지 이두가 사용되게 됨. 1) 吏胥들 사이에 깊은 뿌리, 2) 한자의 후광.
- 고려와 조선의 공문서에 사용됨.
6) 養蠶經驗撮要(1415)
(A) 潛陽物 大惡水 故食而不飮
(B) 蠶段() 陽物是乎等用良(이온쓰아) 水氣乙(을) 厭却 桑棄叱分() 喫破爲遣(고) 飮水不冬(안)
- (A)는 한문, (B)는 이두 번역.
4절. 口訣
- 구결이란 ‘입
(8라) 현대 한국어: 20세기 이후의 한국어
(8)의 시대 구분은 왕조 교체와 같은 언어 외적인 요인보다는 언어 내적인 변화를 중요한 근거로 삼은 것이다. 물론 이 두 요인이 완전히 별개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왕조 교체로 인해 한반도 언어의 중심지가 경주에서 개성으로 이동하는 언어 내적인 변화를 겪었다. 언어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언어 내적인 변화를 겪은 것이다. 이를 두고 고대 한국어와 중세 한국어의 구분이 왕조 교체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보다 정확히는 왕조 교체를 통한 언어 중심지의 이동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세 한국어 단계에서 전기와 후기를 나눈 근거로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나 훈민정음의 창제를 역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과 조선의 왕조 교체나 이로 인한 개성에서 서울로의 중앙어의 이동이 언어 변화의 요인이 될 수 없고,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표기법 상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언어 자체를 변화하는 요인은 되기 어렵다. 중세 한국어 시기를 전기와 후기로 나눈 기준은 14세기경에 있었던 대규모의 모음 변화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중세 한국어와 근대 한국어의 구분 역시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전란 이전에 이미 한국어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그 변화가 완성된 시기인 16세기 후반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한 것이다. 현대 한국어의 시기는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삼는 경우부터 해방 전후로 삼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대략적으로 20세기 초를 그 경계로 삼고 있다.
4. 文字의 體系
1절. 文字의 定着
(1) 歷史書 編纂
高句麗: 留記 100권 - 600년 新集으로 改修.
百濟: 375년 書記 편찬.
新羅: 545년 國史 편찬.
(2) 口語와 文語의 불일치
라틴어와 중세 유럽의 상황과 유사.
문어와 구어의 干涉: 한문 요소가 국어에 침투.
2절. 固有名詞 表記
1. 고유명사의 표기
- 인명과 지명과 같은 고유명사의 표기 필요성 대두.
- 한문이 고유명사 표기 부호로 이용되어 자국어 표기의 첫 단계가 성립.
- 고유명사 표기를 시작으로 借字表記法이 시작.
2. 표기법의 원리
- 한자의 表意的 機能과 表音的 機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이용함.
1) 表意的 機能: ‘古’자를 그 의미와 관계없이 ‘고’라는 음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
한자의 六書 가운데 假借의 원리와 동일하므로 독창적인 방법 아님.
▶ 釋讀字
2) 表音的 機能: 표의성을 자국어의 단어로 공정시키는 원리.
‘水’자를 그 음과는 관계없이 ‘믈’이란 단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
‘믈’을 ‘水’의 새김(釋 또는 訓)이라함. 독창적인 방식.
▶ 音讀字
- 현재 音讀의 전통: 통일신라 경덕왕(757) 중국식 지명(한자 2자)으로 개명한 것.
3. 釋讀의 전통
1) 赫居世: 삼국유사(권1) 蓋鄕言也 或作弗矩內王 言光明理世也
赫居世: 釋讀, 弗矩內: 音讀 赫=弗, 世=內 居: 音讀
2) 元曉: 元曉亦是方言也 當時人皆以鄕言稱之 始旦也
3절. 吏讀
- 한자를 이용한 국어 표기의 노력은 고유명사 표기에 이어 문장 표기로 이어짐.
1) 초기 吏讀 資料
- 고구려: 延壽元年太歲在卯三月中太王敬造
- 경주 丹鳳塚의 銀盒의 銘文.
- 三月中: ‘中’은 처격 표시.
- 신라로 이어져 본격적인 吏讀로 발달.
2) 명칭
- 帝王韻紀(1287년경): 吏書
- 大明律直解(1395): 吏道
- 訓民正音, 世宗實錄: 吏讀
- 신라 시대 이러한 명칭이 사용된 것은 확인하기 어려움.
- ‘吏讀’란 명칭은 ‘吏胥’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신라시대에는 金石文에도 사용된 점으로 이 명칭은 이후에 생긴 것으로 판단.
3) 壬申誓記石
- 임신서기석: 신라 때 금석문. 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慶州市) 견곡면(見谷面) 석장사(石丈寺) 부근에서 발견된 자연석이다. 길이 32㎝, 나비 12.5㎝, 두께 2㎝. 아래쪽으로 좁아지는 모양으로 5행 74자의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와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비문은 임신년 6월 두 화랑도가 나라에 충성할 것과 앞으로 3년 안에 《시경》 《상서》 《서경》 《예기》 《좌전》을 습득하겠다고 맹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임신년이라는 간지는 신라 때 국학이 체제를 갖춘 뒤인 732년(성덕왕 31)이거나 화랑도가 융성하였던 시기인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문은 신라융성기에 청소년들의 유교도덕사상을 엿볼수 있으며 고대문화사, 특히 학술사상사·서식 등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壬申年六月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 한문 어순: 壬申年六月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自今三年以後 執持忠道 誓无過失 若失此事 誓得大罪天 若國不安大亂世 誓之可容行 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誓倫得詩尙書禮傳三年
- 신라어의 어순에 따라 배열.
- 문법형태소는 ‘之’만 종결형으로 표시하고 있음.
4) 新城碑(591)
辛亥年二月卄六日 南山新城作節 如法以作 候三年崩破者 罪敎事爲聞敎令誓事之
- 節, 以, 敎, 令, 爲, 之
- 석독되어 읽으며 한자의 본래 의미로 사용한 점으로 초기 이두로 볼 수 있음.
5) 葛項寺 造塔記(758)
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立在之
妹三人業以成在之(겨오)
者零妙寺言寂師在(겨며, 있으며)
姉者昭文皇太后君女在
妹者敬信太王女在也
- 명실상부한 이두의 성립은 新城碑, 葛項寺 造塔記를 통해 볼 때, 대체로 7세기로 설정.
- 이두를 설총이 지은 것이라고 하나 믿기 어렵고, 口訣과 관련 있을 것임.
- 19세기 말까지 이두가 사용되게 됨. 1) 吏胥들 사이에 깊은 뿌리, 2) 한자의 후광.
- 고려와 조선의 공문서에 사용됨.
6) 養蠶經驗撮要(1415)
(A) 潛陽物 大惡水 故食而不飮
(B) 蠶段() 陽物是乎等用良(이온쓰아) 水氣乙(을) 厭却 桑棄叱分() 喫破爲遣(고) 飮水不冬(안)
- (A)는 한문, (B)는 이두 번역.
4절. 口訣
- 구결이란 ‘입
추천자료
국어표기법
국어의 형성과정
근대, 현대 국어 연구
[훈민정음] 훈민정음 창제 배경, 의의, 동기
[국어학]잘못된 외래어 표현의 예와 실태
[훈민정음][한글][국어][우리말][우리글]훈민정음과 한글의 원리 및 의의(훈민정음 창제의 목...
한글 표기법의 변천에 대하여
중세국어와 근대국어의 고찰
우리말(국어, 우리글, 한글)의 중요성, 우리말(국어, 우리글, 한글)의 장점, 우리말(국어, 우...
방언(사투리, 지역어) 정의와 종류, 방언(사투리, 지역어)에 대한 태도, 방언(사투리, 지역어...
한국 중세문학의 성격, 한국 중세문학의 배경, 한국 중세문학 서사문학, 한국 중세문학 통일...
2011년 2학기 중세국어연습 출석대체시험 핵심체크
제5장 국어의 어휘
중세후기 교회적 상황에 대해서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