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茅盾의 문학적 생애
2. 茅盾의 문학적 업적
3. 茅盾에 대한 연구
2. 茅盾의 문학적 업적
3. 茅盾에 대한 연구
본문내용
잘 다듬어져 있다.
작품 창작 뿐 아니라 문학비평 혹은 문학이론도 茅盾의 문학적 성취 가운데 매우 큰 항목에 해당한다. 특히 그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 말에 이르는 20 여 년 사이에 문학비평 분야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실 그가 처음 문학활동을 시작했던 분야는 바로 비평이었다. 五四時期 이후 그는 줄곧 봉건적인 문학의식과 보수적 문학의식에 대한 비판을 가해 왔으며 매우 활발하게 각종의 문학적 논쟁에 참여해 왔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그 의미내용으로서도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진보적인 문학의식의 확산, 사회주의적 문학활동의 유포에 매우 크게 기여했다. 茅盾은 문학에 첫 발을 디뎠던 五四運動 당시 <<小說月報>>의 편집을 맡으면서 魯迅, 鄭振鐸, 葉紹鈞 등과 함께 문학적 논쟁에 뛰어드는 한편 수많은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문학비평은 현실주의 문학관의 유포 뿐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신예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지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했다.
茅盾의 문학비평은 또 문학비평이 본격적인 문학의 한 분야로서 정립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물론 茅盾 이전에도 胡適, 周作人 등이 문학비평을 시작했지만 비전문적이고 개괄적인 단계에 머물렀던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茅盾의 비평은 문학적 안목과 상당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한 단계 높은 것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는 <<小說月報>>를 혁신한 뒤 거의 매 번 비평을 게재하여 비평이라는 분야 자체를 매우 확대시켰다. 그의 문학비평은 중국문학 뿐 아니라 서구문학 전반에 걸친 상당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당시로서는 매우 수준이 높은 것이었다. 그의 대체적인 이론적 입장은 보편적인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현실주의적 원칙을 견지하면서 심미성과 효용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3. 茅盾에 대한 연구
처녀작부터 문단의 주목을 끌었던 만큼 茅盾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일찌기 1931년에 伏志英의 <<茅盾評傳>>이 나왔으며 뒤이어 1933에는 黃人影의 <<茅盾論>>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당시 <<蝕>> 三部作과 함께 등장했던 茅盾이 얼마나 문단의 각광을 받았는가를 말해 주는 사실이라 하겠다. 1930년대 이후 茅盾은 문학비평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거론되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魯迅이나 瞿秋伯도 수 차례에 걸쳐 茅盾의 문학에 대해 직접 글을 발표했다. 1945년 茅盾의 문학활동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개최를 중심으로 하여 나온 그에 대한 수많은 글들은 그의 문학적 활동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949년 이후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시각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면서 茅盾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아졌다. 그는 중국의 현대문학사를 논할 때 뺄 수 없는 고전적인 작가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교과서에도 반드시 수록되는 작가가 되었다.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작품과 문학적 활동은 매우 상세하게 연구되었고 공인되었다. 1954년에 출판된 吳奔星의 <<茅盾小說講話>>, 1959년에 출판된 <<邵伯周>>의 <<茅盾의 文學道路>>, 葉子銘의 <<論茅盾四十年的文學徒勞>>는 그에 대한 연구서 가운데 가장 상세하고 충실한 것들로 꼽힌다.
文化大革命 기간 동안에는 앞에 말한 대로 茅盾은 매우 부당하게 격하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특히 1964년 그의 <<林家鋪子>>를 각색한 영화가 極左派에 의해 부르조아적 사상에 오염된 작품으로 비판당하면서 그의 문학과 작품은 鄧小平體制 등장 이전까지 줄곧 왜곡되고 공격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그의 문학적 위치는 다시 복구되고 이전보다 오히려 더 중시되고 있다.
작품 창작 뿐 아니라 문학비평 혹은 문학이론도 茅盾의 문학적 성취 가운데 매우 큰 항목에 해당한다. 특히 그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 말에 이르는 20 여 년 사이에 문학비평 분야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실 그가 처음 문학활동을 시작했던 분야는 바로 비평이었다. 五四時期 이후 그는 줄곧 봉건적인 문학의식과 보수적 문학의식에 대한 비판을 가해 왔으며 매우 활발하게 각종의 문학적 논쟁에 참여해 왔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그 의미내용으로서도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진보적인 문학의식의 확산, 사회주의적 문학활동의 유포에 매우 크게 기여했다. 茅盾은 문학에 첫 발을 디뎠던 五四運動 당시 <<小說月報>>의 편집을 맡으면서 魯迅, 鄭振鐸, 葉紹鈞 등과 함께 문학적 논쟁에 뛰어드는 한편 수많은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문학비평은 현실주의 문학관의 유포 뿐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신예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지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했다.
茅盾의 문학비평은 또 문학비평이 본격적인 문학의 한 분야로서 정립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물론 茅盾 이전에도 胡適, 周作人 등이 문학비평을 시작했지만 비전문적이고 개괄적인 단계에 머물렀던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茅盾의 비평은 문학적 안목과 상당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한 단계 높은 것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는 <<小說月報>>를 혁신한 뒤 거의 매 번 비평을 게재하여 비평이라는 분야 자체를 매우 확대시켰다. 그의 문학비평은 중국문학 뿐 아니라 서구문학 전반에 걸친 상당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당시로서는 매우 수준이 높은 것이었다. 그의 대체적인 이론적 입장은 보편적인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현실주의적 원칙을 견지하면서 심미성과 효용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3. 茅盾에 대한 연구
처녀작부터 문단의 주목을 끌었던 만큼 茅盾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일찌기 1931년에 伏志英의 <<茅盾評傳>>이 나왔으며 뒤이어 1933에는 黃人影의 <<茅盾論>>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당시 <<蝕>> 三部作과 함께 등장했던 茅盾이 얼마나 문단의 각광을 받았는가를 말해 주는 사실이라 하겠다. 1930년대 이후 茅盾은 문학비평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거론되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魯迅이나 瞿秋伯도 수 차례에 걸쳐 茅盾의 문학에 대해 직접 글을 발표했다. 1945년 茅盾의 문학활동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개최를 중심으로 하여 나온 그에 대한 수많은 글들은 그의 문학적 활동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949년 이후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시각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면서 茅盾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아졌다. 그는 중국의 현대문학사를 논할 때 뺄 수 없는 고전적인 작가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교과서에도 반드시 수록되는 작가가 되었다.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작품과 문학적 활동은 매우 상세하게 연구되었고 공인되었다. 1954년에 출판된 吳奔星의 <<茅盾小說講話>>, 1959년에 출판된 <<邵伯周>>의 <<茅盾의 文學道路>>, 葉子銘의 <<論茅盾四十年的文學徒勞>>는 그에 대한 연구서 가운데 가장 상세하고 충실한 것들로 꼽힌다.
文化大革命 기간 동안에는 앞에 말한 대로 茅盾은 매우 부당하게 격하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특히 1964년 그의 <<林家鋪子>>를 각색한 영화가 極左派에 의해 부르조아적 사상에 오염된 작품으로 비판당하면서 그의 문학과 작품은 鄧小平體制 등장 이전까지 줄곧 왜곡되고 공격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그의 문학적 위치는 다시 복구되고 이전보다 오히려 더 중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