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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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훈민정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훈민정음의 기원
Ⅲ. 훈민정음의 제자원리
 1. 자음의 상형
 2. 모음의 상형
Ⅳ. 훈민정음의 초․ 중․ 종성체계
 1. 초성 체계
 2. 중성 체계
 3. 종성 체계
Ⅴ. 맺음말

본문내용

자의 글자의 모양은 범자에 기대어 만들었다.”라고 하여 범자기원설을 처음 말한다.
또한 광해군 때의 이수광(李光)은 『지봉유설(芝峯類說)』권18에서 “우리나라의 언문 글자의 모양은 모두 범자를 본받았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주로 글자 모양(字體)의 유사성을 가지고 언급한 것이다. 후에 영조 때의 황윤석(黃胤錫)은 『운학본원(韻學本源)』에서 “우리 훈민정음의 근원은… 결국 범자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위 세 학자의 기록은 훈민정음과 고대인도의 범어와의 관련성에 관한 언급이라 하겠다.
4. 파스파자 기원설 (몽고문자 기원설)
훈민정음의 기원설 중 하나인 몽고문자 기원설과 파스파자 기원설은 내용이 동일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의 파스파 문자는 소리로 된 글자이요, 중국의 글자는 모양을 주로 한 글자이니 우리의 언문과 가까운 성질의 것은 몽고 글자이지 한자는 아니다. 세종께서 한글을 처음 만드실 제 명 나라의 학사 황찬(黃瓚)이 요동에서 귀양살이를 하는지라 성삼문 등을 보내어 질문하게 하였는데 13번이나 왕래하였다. 이 때에 원이 망한지 겨우 79년이 된 즉 황찬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몽고 글자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여기서 ‘원의 파스파 문자’와 ‘몽고 글자’는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 따라서 몽고문자 기원설과 파스파자 기원설이 같은 의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유희(柳僖) 역시 『언문지(諺文志)』에서 “우리 세종 때 문신에게 명하여 몽고 글자 모양에 기대어 만들었다. (중략) 언문은 비록 몽고에서 시작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성삼문 등이 13번이나 요동의 황찬에게 가서 음운을 질문한 사건에 대해서는 “언문 발음법은 모두 몽고 운회를 본뜬 것이며 황찬에게 물은 것이 운회에 관한 것이다. 고려 말 궁중에서 몽고 글자와 말을 썼다. 또 신숙주는 몽고어를 잘 했는데 곧 이것은 당시 몽고어를 숭상하고 닦았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언문의 글자 모양(字體)는 범자에 의거하여 만든 몽고 문자의 탈체(脫體)다.” 라고 하여 파스파자 기원설의 유력한 근거가 된다.
5. 고대 문자 기원설
훈민정음의 기원을 몽고와 같이 이웃나라 문자와의 상관성을 두고 논하려는 시도가 충분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자, 그 연원을 우리나라 내부로 돌리게 된 데서 비롯한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고대 문자가 있었으며, 훈민정음은 고대 문자를 이어 받아 발전시켜 만든 것이기에 훈민정음의 기원을 우리의 고대문자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이다.
일례로 영조 때의 신경준(申景濬)은 『운해훈민정음(韻解訓民正音)』에서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고대문자가 있었으며, 훈민정음은 이를 이어받아 개량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6. 태극사상 기원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학문적 배경인 성리학을 확대 해석하여, 훈민정음이 성리학의 바탕이 된 역학의 원리에 의해 창제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훈민정음해례의 제자해(制字解)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가 음양오행의 천지의 이치에 기인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우주의 근본 원리는 하나의 음양과 오행일 따름이다. 곤(坤)과 복(復)의 사이가 태극(太極)이 되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교차되어 음양이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도 다 음양의 이치가 있거늘 돌아 보건대 사람이 이를 살피지 못할 따름이다. 이제 훈민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슬기로써 이룩하고 힘으로써 찾은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를 따라 그 이치를 다했을 다름이다. 이치는 이미 둘이 아니고 하나이니, 어찌 천지 귀신과 더불어 그 쓰임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 기원설은 훈민정음이 역(易)의 기본원리나 생성원리에 의해 제자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리와 결합되어 있는 상수(象數)의 개념이 훈민정음 창제 때 상형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주장한다.
7. 창문 상형 기원설
독일학자 에카르트(P. Andres Echardt)가 주장한 것으로 훈민정음의 모든 글자가 우리 고유 가옥의 창문을 본떠 마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가옥의 창살은 우연히도 훈민정음 28자의 자체들과 비슷한 무늬가 많기에 이러한 기원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8. 기-성문도(起-成文圖) 기원설
글자 모양의 유사성보다는 제자 방식을 가지고 훈민정음의 기원을 설명한다. 훈민정음의 제자 방식이 상형의 원리를 적용했다면, 한자의 제자 방식의 기본이 되는 육서법(六書法)을 본떴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송나라 정초(鄭樵)의 육서략(六書略)에는 한 항목으로 ‘起-成文圖’가 있는데 여기서 상형의 기본이 되는 자획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이를 참고해서 제자 하였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기원설이다.
이 밖에도 거란문자 여진문자 기원설, 일본 신대문자 기원설, 빨리(Pali)문자 기원설, 악리(樂理) 기원설 등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훈민정음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학설은 크게 두 가지 분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외국 언어와의 상관성을 따지는 기원설로 고전기원설, 범자기원설, 파스파자 기원설 등이 이에 해당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될 당시 15세기에는 이미 주변 국가들이 고유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이미 존재한 글자들이나 문헌상에 알려져 있던 글자들을 참고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창조’라는 행위자체에 엄밀히 말해 순수한 창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는 기존에 있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 새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언어의 창제 역시 이와 유사할 것이다. 훈민정음이 아무리 고유의 독자적인 방식에 따라 이전의 문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전례 없는 파격의 형식을 보여준다고 칭송한다 하더라도, 이미 그간의 연구를 통해 훈민정음이 중국의 음운학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언어와 유사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유사성에 기인하여 훈민정음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외국의 문자와의 상관성을 논한다는 의미가 있겠으나, 훈민정음 자체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는 크게 관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분류는 훈민정음 언어 내부의 자체적 질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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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5.26
  • 저작시기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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