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향가의 의미
Ⅲ. 향가의 성격
1. 4구체
2. 8구체
3. 10구체
Ⅳ. 향가의 발생
Ⅴ. 향가의 형식
Ⅵ. 향가의 해독
1. 차자 표기의 원리
2. 훈주음종(訓主音從)의 원리(原理)
3.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리(原理)
Ⅶ. 향가의 작가층
Ⅷ. 향가의 작품집
참고문헌
Ⅱ. 향가의 의미
Ⅲ. 향가의 성격
1. 4구체
2. 8구체
3. 10구체
Ⅳ. 향가의 발생
Ⅴ. 향가의 형식
Ⅵ. 향가의 해독
1. 차자 표기의 원리
2. 훈주음종(訓主音從)의 원리(原理)
3.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리(原理)
Ⅶ. 향가의 작가층
Ⅷ. 향가의 작품집
참고문헌
본문내용
향가의 의미, 향가의 성격, 향가의 발생, 향가의 형식, 향가의 해독, 향가의 작가층, 향가의 작품집 분석
Ⅰ. 개요
Ⅱ. 향가의 의미
Ⅲ. 향가의 성격
1. 4구체
2. 8구체
3. 10구체
Ⅳ. 향가의 발생
Ⅴ. 향가의 형식
Ⅵ. 향가의 해독
1. 차자 표기의 원리
2. 훈주음종(訓主音從)의 원리(原理)
3.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리(原理)
Ⅶ. 향가의 작가층
Ⅷ. 향가의 작품집
참고문헌
Ⅰ. 개요
신라향가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록은 실상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다. 『삼대목』의 편찬사실 등을 적은 『삼국사기』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대부분의 정보를 우리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의존한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향가를 佛讚歌謠의 성격을 가진 노래로 단정하려는 경향도 있다.
향가를 지은 대부분의 작가, 향가의 주된 내용이 불교적이라 해서 그 시적 형상화의 수준을 종교적 심미구조의 일방성으로 평가하는 시각은 불식되어야 한다. 불교는 그 시대의 생활이었다. 佛敎文化主義的 性向이 당대 문화를 주도하였고, 그 수준은 매우 높았다. 원효의 ‘無碍戱’는 비록 향가에 관한 직접자료라고 볼 수 없지만, 당시 사회에서 노래가 지어지고 유통되는 경로를 잘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친근한 소재를 가지고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 전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또 거기에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나무하는 초동이며 물 긷는 부인네들까지도 부처의 名號를 외웠다는 사실은 불교의 핵심적 사상이 대중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퍼져나갔음을 말해 준다. 승려를 중심으로 하는 한 무리의 지식인 그룹들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중들을 교화했다. 그만큼 승려들은 자신들의 세계에만 안주하지 않고 대승적 견지에서 한 시대의 문화패턴을 창출해 내었던 것이다.
이 같은 향가의 본질을 우리는 어떻게 규정해야할까? 우선 전하는 기록을 재점검하며 다가가 보자.
향가에 관한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자료에 한정한다면, 『균여전』에서 처음 찾는다. 그의 추종자로 보이는 赫連挺은 균여의 전기를 쓰면서 향가를 지은 사실에 무척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균여가 한 일이 많고 그 생애가 독특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향가에 뛰어나고(師之外學于閑於詞腦 依普賢十種願往 著歌十一章 : 「歌行化世」分), 그것으로 신이한 효험을 보았음을 강조했다(靈通寺白雲房 年遠侵壞 師重修之 因此地神所責 災變日起 師略著歌一首 以攘幟帖其歌于壁 玆以之後精痢卽滅也 : 「感應降魔」分).
그런데 『균여전』에서 향가기록으로 우리가 먼저 주목할 부분은 ‘향가’와 ‘사뇌가’라는 용어일 것이다. 「譯歌現德」分에는 “八九行之唐序 義廣文豊 十一首之鄕歌 詞淸句麗 其爲作也 號稱詞腦”라는 대목이 있는데, ‘향가’와 ‘사뇌’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절이면서 둘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밝혀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곧, 鄕歌는 앞서 唐序와 對句를 이룬다면 이는 고유명사라기보다 우리만의 노래임을 밝히려는 의미가 강하고, 이를 정식명칭으로 따진다면 詞腦歌가 될 것이다. 신라시기까지는 이러한 구분을 굳이 따지려 하지 않았겠지만 고려조에 들어서서 어느 정도 유행에서 지난 노래형태를 정리하자니 이렇듯 자상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보인다.
우리는 『균여전』의 향가관련 기록에서 노래로 신이한 효험을 보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적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최소한 균여의 시대는 향가의 전성기가 물러난 다음이지만 그 분위기와 정서를 신라에서 이어받고 있었다. 신라향가에서 ‘천수대비가’의 희명은 딸의 눈을 얻고자 했고, ‘제망매가’의 월명은 지전을 날려 죽은 누이의 명혼을 천도하였다. ‘원왕생가’의 광덕은 노래를 부르며 극락왕생을 기원했고, ‘도솔가’의 월명과 ‘혜성가’의 세 화랑은 역시 노래로 변괴를 물리쳤다. 이 같은 사실들은 노래를 통해 얻은 신이한 효험의 예인데, 시대가 시대려니와 세인들의 戱樂之具가 되자면 이 같은 힘이 뒷받침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괴탄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로써 형성된 노래의 저변은 거기에 한 차원 높은 서정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였다. 이것이 당대 향가의 본질을 찾아가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균여의 시대는 어찌 되었는가? 백운방에서 귀신을
Ⅰ. 개요
Ⅱ. 향가의 의미
Ⅲ. 향가의 성격
1. 4구체
2. 8구체
3. 10구체
Ⅳ. 향가의 발생
Ⅴ. 향가의 형식
Ⅵ. 향가의 해독
1. 차자 표기의 원리
2. 훈주음종(訓主音從)의 원리(原理)
3.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리(原理)
Ⅶ. 향가의 작가층
Ⅷ. 향가의 작품집
참고문헌
Ⅰ. 개요
신라향가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록은 실상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다. 『삼대목』의 편찬사실 등을 적은 『삼국사기』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대부분의 정보를 우리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의존한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향가를 佛讚歌謠의 성격을 가진 노래로 단정하려는 경향도 있다.
향가를 지은 대부분의 작가, 향가의 주된 내용이 불교적이라 해서 그 시적 형상화의 수준을 종교적 심미구조의 일방성으로 평가하는 시각은 불식되어야 한다. 불교는 그 시대의 생활이었다. 佛敎文化主義的 性向이 당대 문화를 주도하였고, 그 수준은 매우 높았다. 원효의 ‘無碍戱’는 비록 향가에 관한 직접자료라고 볼 수 없지만, 당시 사회에서 노래가 지어지고 유통되는 경로를 잘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친근한 소재를 가지고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 전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또 거기에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나무하는 초동이며 물 긷는 부인네들까지도 부처의 名號를 외웠다는 사실은 불교의 핵심적 사상이 대중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퍼져나갔음을 말해 준다. 승려를 중심으로 하는 한 무리의 지식인 그룹들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중들을 교화했다. 그만큼 승려들은 자신들의 세계에만 안주하지 않고 대승적 견지에서 한 시대의 문화패턴을 창출해 내었던 것이다.
이 같은 향가의 본질을 우리는 어떻게 규정해야할까? 우선 전하는 기록을 재점검하며 다가가 보자.
향가에 관한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자료에 한정한다면, 『균여전』에서 처음 찾는다. 그의 추종자로 보이는 赫連挺은 균여의 전기를 쓰면서 향가를 지은 사실에 무척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균여가 한 일이 많고 그 생애가 독특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향가에 뛰어나고(師之外學于閑於詞腦 依普賢十種願往 著歌十一章 : 「歌行化世」分), 그것으로 신이한 효험을 보았음을 강조했다(靈通寺白雲房 年遠侵壞 師重修之 因此地神所責 災變日起 師略著歌一首 以攘幟帖其歌于壁 玆以之後精痢卽滅也 : 「感應降魔」分).
그런데 『균여전』에서 향가기록으로 우리가 먼저 주목할 부분은 ‘향가’와 ‘사뇌가’라는 용어일 것이다. 「譯歌現德」分에는 “八九行之唐序 義廣文豊 十一首之鄕歌 詞淸句麗 其爲作也 號稱詞腦”라는 대목이 있는데, ‘향가’와 ‘사뇌’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절이면서 둘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밝혀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곧, 鄕歌는 앞서 唐序와 對句를 이룬다면 이는 고유명사라기보다 우리만의 노래임을 밝히려는 의미가 강하고, 이를 정식명칭으로 따진다면 詞腦歌가 될 것이다. 신라시기까지는 이러한 구분을 굳이 따지려 하지 않았겠지만 고려조에 들어서서 어느 정도 유행에서 지난 노래형태를 정리하자니 이렇듯 자상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보인다.
우리는 『균여전』의 향가관련 기록에서 노래로 신이한 효험을 보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적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최소한 균여의 시대는 향가의 전성기가 물러난 다음이지만 그 분위기와 정서를 신라에서 이어받고 있었다. 신라향가에서 ‘천수대비가’의 희명은 딸의 눈을 얻고자 했고, ‘제망매가’의 월명은 지전을 날려 죽은 누이의 명혼을 천도하였다. ‘원왕생가’의 광덕은 노래를 부르며 극락왕생을 기원했고, ‘도솔가’의 월명과 ‘혜성가’의 세 화랑은 역시 노래로 변괴를 물리쳤다. 이 같은 사실들은 노래를 통해 얻은 신이한 효험의 예인데, 시대가 시대려니와 세인들의 戱樂之具가 되자면 이 같은 힘이 뒷받침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괴탄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로써 형성된 노래의 저변은 거기에 한 차원 높은 서정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였다. 이것이 당대 향가의 본질을 찾아가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균여의 시대는 어찌 되었는가? 백운방에서 귀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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