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송강 정철의 생애
Ⅲ. 송강 문학의 작품 세계
1. 현실지향의 세계
2. 탈현실의 세계
2.1. 풍류취락
2.2. 자연귀의
Ⅴ. 결론
참고문헌
Ⅱ. 송강 정철의 생애
Ⅲ. 송강 문학의 작품 세계
1. 현실지향의 세계
2. 탈현실의 세계
2.1. 풍류취락
2.2. 자연귀의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어, 그 상황이 극한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김진욱, 위 논문, 95쪽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자, 인종의 외척인 대윤파는 덩달아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인종은 즉위한지 9개월 만에 승하하였으며, 당시 12세 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명종이 왕위를 이어 받게 되었다. 명종은 나이가 어린 탓에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문정왕후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때문에 조정의 권력은 자연히 소윤파에게로 돌아갔다.
소윤파는 윤임 등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고함으로써 대윤파를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소윤파의 이러한 계획은 대윤파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소윤파는 의도했던 대로 대윤파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 사건을 을사사화라고 하는데, 윤임 일파에 사림세력이 몰려 있다가 한꺼번에 참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 을사사화에 정철의 자부 계림군 유가 윤임의 조카라는 이유로 연루되었다. 정철의 생애가 을사사화가 연관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철의 자부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자 같은 맥락에서 자연히 정철의 집안에까지 그 화가 옮겨 붙은 것이다. 그리하여 정철의 부친은 오랫동안 유배를 가 있게 되었다.
송강의 집안의 암흑기는 정철이 16세가 되던 해 정철의 아버지가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면서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다. 정철 개인 역시 이 때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생애의 튼튼한 받침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스승은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의심할 여지가 없이 훌륭한 학자이며 선비로서, 그들의 학문적 깊이는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만큼의 정도였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철이 후에 훌륭한 정치가이자 작가가 되는 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때 정철의 문학적 재능과 감성의 밑거름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철은 26세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문과별과에 장원급제를 한다. 유년시절 명종과의 친분도 있어서 그의 관직 생활을 순조로운 듯 하였다. 그러던 중 명종의 종형인 경양군이 살인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양군이 처갓집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그의 처남을 유인하여 죽이는 일을 벌인 것이다. 이에 명종은 이 사건의 법 집행을 맡은 정철에게 사적인 관용을 베풀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을 가진 정철은 명종의 부탁을 거절하고 결국 경양군 부자를 처형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철은 오랜 시간 한직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정철은 35세 되던 해 4월에 아버님의 상을 당한다. 그리고 2년 후인 38세에에는 어머니의 상을 당하게 된다.
정철이 4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는 붕당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정의 유학자들 중 거의 대부분은 둘로 갈라져 서로를 공격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에 어느 쪽에도 화합할 수 없었던 정철은, 10월에 사간 사간원(삼사의 하나로 임금에게 간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아)의 종삼품 벼슬
을 제수받았지만 사직하고 창평으로 돌아간다. 선조는 정철을 만류하였지만 정철은 자신의 뜻을 끝내 굽히지 않는다. 정철은 창평으로 돌아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정철은 45세에 다시 벼슬에 나아갔다. 그리고 이 때 가사작품인 관동별곡과 단가 훈민가를 지었다. 특히 훈민가는 백성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50세에 정철은 다시 창평으로 돌아와 가사작품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창작하였다. 이후에도 정철은 벼슬길과 휴식기를 번갈아 반복하여 지내며 작품 창작을 이루어내었고, 그는 1593년 58세에 눈을 감았다.
Ⅲ. 송강 문학의 작품 세계
정철은 자신의 문학 작품 속에서 두 가지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 중 하나는 현실세계에 대한 집착이고, 나머지 하나는 탈현실에 대한 욕구와 지향이다. 현실세계에 대한 집착이란, 유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둔 현실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곳에서 이상적 세계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성 중심의 의식이다. 반면 탈현실에 대한 욕구와 지향이란, 전자의 이성중심의 의식과는 상반되는 감성 중심의 의식으로서, 이는 풍류취락과 자연귀의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상반되는 두 개의 작품 세계는 정철의 작품 속에서 만큼은 상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즉 서로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송강 문학 세계의 지향점을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실 지향과 탈현실의 상관성을 규명하고, 그 미학적 특질과 성격을 고찰하고자 한다.
1. 현실지향의 세계
송강 문학에서 전반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서는 ‘연군’이다. 송강은 벼슬길과 휴면기를 수차례 번갈아 지내던 인물이었다. 그는 벼슬길에서 물러날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때일지라도 임금과 멀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임금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하고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하였다.
秋風乍起愁枯竹 가을 바람 일어나서 枯竹이 시름하고
嶺月初生是美人 산 달이 갓 돋으니 바로 美人이로세.
不覺依然成再拜 저도 모르게 두 번 절을 하고나니
孤臣比夜白髮新 孤臣의 백발이 이 밤에 새로워라.
<月夜作> 송강유적보존회, <송강속집> 권1, 『국역 송강집』,제일문화사, 1988, 223쪽
산마루에 갓 돋은 달을 보고 이를 미인이라 칭하며 ‘저도 모르게 두 번 절을 하는’ 고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정철이 얼마나 유가적 이념에 철저한 사대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철의 체질화된 연군의식은 이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애절하게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사미인곡>에서는 이상적 바람과 더불어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함께 드러난다. 즉 사미인곡의 작품 내용은 ‘(가) 연분성의 부여 - (나) 부여된 연분성의 파기 - (다) 이로 빚어진 절망적 상황의 표출 - (라) 연분성 회복의 의지’로 구성된다.
(가)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緣연分분이며 하 모 일이런가 나나 졈머 잇고 님 나 날괴시니 이음 이랑 견졸 노여 업다 平평生애 願원요 녜자 얏더니
(나) 늙거야 므일로 외오두고 글이고 엇그제 님을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도 엇디야 下하界계예 려오니 올저긔 비슨머리 얼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자, 인종의 외척인 대윤파는 덩달아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인종은 즉위한지 9개월 만에 승하하였으며, 당시 12세 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명종이 왕위를 이어 받게 되었다. 명종은 나이가 어린 탓에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문정왕후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때문에 조정의 권력은 자연히 소윤파에게로 돌아갔다.
소윤파는 윤임 등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고함으로써 대윤파를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소윤파의 이러한 계획은 대윤파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소윤파는 의도했던 대로 대윤파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 사건을 을사사화라고 하는데, 윤임 일파에 사림세력이 몰려 있다가 한꺼번에 참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 을사사화에 정철의 자부 계림군 유가 윤임의 조카라는 이유로 연루되었다. 정철의 생애가 을사사화가 연관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철의 자부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자 같은 맥락에서 자연히 정철의 집안에까지 그 화가 옮겨 붙은 것이다. 그리하여 정철의 부친은 오랫동안 유배를 가 있게 되었다.
송강의 집안의 암흑기는 정철이 16세가 되던 해 정철의 아버지가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면서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다. 정철 개인 역시 이 때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생애의 튼튼한 받침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스승은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의심할 여지가 없이 훌륭한 학자이며 선비로서, 그들의 학문적 깊이는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만큼의 정도였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철이 후에 훌륭한 정치가이자 작가가 되는 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때 정철의 문학적 재능과 감성의 밑거름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철은 26세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문과별과에 장원급제를 한다. 유년시절 명종과의 친분도 있어서 그의 관직 생활을 순조로운 듯 하였다. 그러던 중 명종의 종형인 경양군이 살인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양군이 처갓집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그의 처남을 유인하여 죽이는 일을 벌인 것이다. 이에 명종은 이 사건의 법 집행을 맡은 정철에게 사적인 관용을 베풀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을 가진 정철은 명종의 부탁을 거절하고 결국 경양군 부자를 처형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철은 오랜 시간 한직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정철은 35세 되던 해 4월에 아버님의 상을 당한다. 그리고 2년 후인 38세에에는 어머니의 상을 당하게 된다.
정철이 4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는 붕당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정의 유학자들 중 거의 대부분은 둘로 갈라져 서로를 공격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에 어느 쪽에도 화합할 수 없었던 정철은, 10월에 사간 사간원(삼사의 하나로 임금에게 간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아)의 종삼품 벼슬
을 제수받았지만 사직하고 창평으로 돌아간다. 선조는 정철을 만류하였지만 정철은 자신의 뜻을 끝내 굽히지 않는다. 정철은 창평으로 돌아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정철은 45세에 다시 벼슬에 나아갔다. 그리고 이 때 가사작품인 관동별곡과 단가 훈민가를 지었다. 특히 훈민가는 백성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50세에 정철은 다시 창평으로 돌아와 가사작품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창작하였다. 이후에도 정철은 벼슬길과 휴식기를 번갈아 반복하여 지내며 작품 창작을 이루어내었고, 그는 1593년 58세에 눈을 감았다.
Ⅲ. 송강 문학의 작품 세계
정철은 자신의 문학 작품 속에서 두 가지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 중 하나는 현실세계에 대한 집착이고, 나머지 하나는 탈현실에 대한 욕구와 지향이다. 현실세계에 대한 집착이란, 유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둔 현실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곳에서 이상적 세계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성 중심의 의식이다. 반면 탈현실에 대한 욕구와 지향이란, 전자의 이성중심의 의식과는 상반되는 감성 중심의 의식으로서, 이는 풍류취락과 자연귀의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상반되는 두 개의 작품 세계는 정철의 작품 속에서 만큼은 상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즉 서로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송강 문학 세계의 지향점을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실 지향과 탈현실의 상관성을 규명하고, 그 미학적 특질과 성격을 고찰하고자 한다.
1. 현실지향의 세계
송강 문학에서 전반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서는 ‘연군’이다. 송강은 벼슬길과 휴면기를 수차례 번갈아 지내던 인물이었다. 그는 벼슬길에서 물러날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때일지라도 임금과 멀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임금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하고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하였다.
秋風乍起愁枯竹 가을 바람 일어나서 枯竹이 시름하고
嶺月初生是美人 산 달이 갓 돋으니 바로 美人이로세.
不覺依然成再拜 저도 모르게 두 번 절을 하고나니
孤臣比夜白髮新 孤臣의 백발이 이 밤에 새로워라.
<月夜作> 송강유적보존회, <송강속집> 권1, 『국역 송강집』,제일문화사, 1988, 223쪽
산마루에 갓 돋은 달을 보고 이를 미인이라 칭하며 ‘저도 모르게 두 번 절을 하는’ 고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정철이 얼마나 유가적 이념에 철저한 사대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철의 체질화된 연군의식은 이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애절하게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사미인곡>에서는 이상적 바람과 더불어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함께 드러난다. 즉 사미인곡의 작품 내용은 ‘(가) 연분성의 부여 - (나) 부여된 연분성의 파기 - (다) 이로 빚어진 절망적 상황의 표출 - (라) 연분성 회복의 의지’로 구성된다.
(가)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緣연分분이며 하 모 일이런가 나나 졈머 잇고 님 나 날괴시니 이음 이랑 견졸 노여 업다 平평生애 願원요 녜자 얏더니
(나) 늙거야 므일로 외오두고 글이고 엇그제 님을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도 엇디야 下하界계예 려오니 올저긔 비슨머리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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